좁은(손) 바다길이라 하여 "손도" 라 불리는 지족해협에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좁은(손) 바다길이라 하여 "손도" 라 불리는 지족해협에 V자 모양의 대나무 정치망인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목 300여개를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 갯벌에 박고
주렴처럼 엮어 만든 그물을 물살 반대방향으로 벌려 놓은 원시어장이다.
원예전문가를 중심으로 20명의 원예인들이 집과 정원을 개인별 작품으로 조성하여 이룬 마을이다.
스파정원(핀란드풍), 토피어리정원(뉴질랜드풍), 조각정원(스페인풍), 풍차정원(네덜란드풍),
풀꽃지붕(프랑스풍), 채소정원(스위스풍)등 저마다 아름답고 개성적인 21개소의 주택과 개인정원을 나라별 이미지와 테마를 살려 조성하였으며 원예인들이 실제 살면서 가꾸고 있다.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전동성당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
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건물 중의 하나이다.
전주한옥마을의 상징인 경기전. 경기전은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후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6년(1614년) 11월에 중건됐다. 경기전에는 두 개의 숨은 문화코드가 있는데,
하나는 경기전 정문 밖 도로가에 있는 하마비요, 또 하나는 진전의 거북이 이야기이다.
하마비에는“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고 쓰여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어서
이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진전에는 거북이가 붙어 있는데, 경기전을 완성한 목공이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경기전에서 보이는 앞산 승암산이 화산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한다.
작가 최명희(1947-1998). 고단한 삶의 여울, 징검다리 둥지와 같았던
전주의 집들은 지금 깡그리 사라졌지만,
최명희문학관은 생가(生家) 가까운 자리에서 작가가 살아온
기억의 마디마디를 역력히 담고 있다. 문학관은 세상을 떠난 작가가
이 세상에 다시 살러 온 집이기 때문이다.
최명희문학관은 진달래와 철쭉이 차례로 피던 2006년 봄,
그가 나고 자란 전주한옥마을에 세워졌다.
작가가 그토록 귀히 여겼던 경기전과 전동성당, 오목대와 이목대가 있는 곳이다.
아늑한 마당과 소담스런 공원이 있는 문학관은 주 전시관인 독락재(獨樂齋)와
강연장·기획전시장인 비시동락지실(非時同樂之室)로 이뤄졌다.
전통술박물관은 전래주의 맥을 찾아 집집마다 술을 빚던
가양주의 전통이 오롯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우리 전통술들을 전시ㆍ판매하며, 우리 고유의 주조방식을 배우고
직접 빚어보기도 하는 체험형 박물관이다.
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 아지발도(阿只拔道)의 무리를 정벌하고,
승전고를 울리며 개선하여 개경으로 돌아갈 때 전주의 이곳에서 야연(野宴)을 베풀었다는 곳이다.
여기에서 이성계는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었다.
즉 자신의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야심을 넌지시 비쳤다.
그러자 이를 모를리 없는 종사관 정몽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홀로 말을 달려
남고산성 만경대에 올라 비분강개한 마음을 시로 읊었다. 현재 만경대에는 그 시가 새겨져 있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마을..